봉천동 슈바이처.

영성일기 나눔

봉천동 슈바이처.

샬롬 0 484 2021.04.08 22:56
봉천동 슈바이처

한 의사가 차가 펑크가 나서 우연히 멈춰 섰던 곳이 봉천동이었습니다. 그가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종이조각 아래로 사람의 발이 보였습니다. 그는 시체인 줄 알고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서 종이를 들추어 보니 그것은 시체가 아니고 종이 밑에서 누워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고 온 식구가 집도없이 길에서 종이만 덮고 자고 있었는데, 큰 아들이 유독 키가 크다 보니 그의 발만이 불쑥 나와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 그는 큰 결심을 다짐하며 봉천동 그곳에서 한평생 봉사하며 살아 가리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곤 그는 그간 열지 않았던 병원을 다시 봉천동에서 열었습니다. 병원을 차리고 난 후 당시에는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판자촌으로 폐렴 환자를 치료하러 왕진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2인조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칼을 들이대고 의사에게 지갑을 내 놓을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주머니에선 지갑대신 청진기가 나오자 그 순간 다른 한 강도가 어둠 속에서 이 의사를 알아보고 자신의 아들을 무료로 치료해 준 고마운 의사라며 그를 놓아주었습니다.

무보수 치료의 대가로 소중한 생명을 지켰다며 이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날을 회상하며 껄껄 웃는 분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봉천동 슈바이처 윤주홍 원장님 입니다.

그가 봉천동으로 오기 전까지는 동작동에서 병원을 운영했었는데 그곳은 교통사고 환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었습니다. 어느날 병원앞에서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려와 또 교통사고로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기사인 듯한 어떤 사람이 가슴이 찌그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한 어린 아이를 안고 들어 왔습니다.

급히 응급치료를 하려고 자세히 보니 그 아이는 바로 자신의 어린딸이었습니다.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보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는 신앙인 이었지만 '어떵게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하고 의사 까운을 집어던지고 병원문도 굳게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곤 매일 자신의 딸아이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겨울에 무덤에 쌓인 눈으로 딸아이가 추위를 느낄까봐 자신의 웃옷을 벗어서 딸아이의 무덤을 덮어 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일이 1년이나 지속되던 이듬해 봄 어느날, 무덤을 내려오던 길에 열이 펄펄 나는 어린 소녀를 안고 울고 있는 가난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급히 그 아이를 등에 업고 선배의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선배 의사에게 치료비는 제가 부담할 테니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에 어린아이와 할머니가 그동안 문을 닫고 있었던 병원에 불쑥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둘려보던 아이가 "아저씨도 의사야 그런데 왜 의사 옷을 입지 않고 있어?, 청진기도 귀에 않대네"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잠시나마 기쁨을 주기 위하여 그간 입지 않았던 가운을 입고 먼지가 수북히 쌓인 병원 의자에 앉아서 청진기를 대었습니다.

아! 그 순간 천지를 깨우는 듯한 심장의 고동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죽은 딸아이의 심장소리였습니다. 그때 그토록 청진기를 대며 들리기를 원해도 들리지 않았던 그 심장 박동소리가 지금 힘차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 고동소리는 아비의 귀청을 찢고, 아비의 심장을 때리고, 아비의 죽었던 영혼을 깨우는 힘찬 고동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 그때 신음하던 그를 아이가 빤히 올려다 보았습니다. 아! 그 맑고 영롱한 그 아이의 눈동자는 바로 죽었던 딸아이의 눈동자 였습니다.

그는 소리쳤습니다.
"오 하나님! 작은자를 돌보지 않고 세상을 따르던 저를 이제사 깨우십니까?" 그는 그 길로 남현동의 보육원을 찾아갔습니다.
그 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살고 있는 봉천동에 병원을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것이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자신을 이곳에 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병원 원장이자 교회 장로입니다.

그는 94년부터는 관악 장학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2,000여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자신이 가진 시간과
몸, 경제력의 3분의 1 이상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72년부터 섬마을을 돌아다니며
무료 의료 봉사를 하며 제 1회
서울시민상을 수여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의사로서 자신이 받았던
크나큰 상처를 도리어 다른 사람을 치료하고 봉사하는 의술을 배품으로서 자신도 치유됨은 물론, 많은 다른 사람에게도 너무도 큰 치유와 사랑을 널리 널리 아름답게 배푸시는 분 이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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